"이젠 인재양성소 됐죠"…한미약품 원년 멤버의 '한숨' [돈앤톡]

입력 2024-02-27 10:00   수정 2024-02-27 15:50

"한미약품이요? 예전에는 연구·개발(R&D) 인재명가였죠. 이제는 인재양성소이자 사관학교가 된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지만, 저희같이 인력난에 허덕이는 업체들 입장에서는 솔직히 감사한 상황이긴 합니다."

최근 충북 오송의 한 바이오업체 고위관계자와 나눈 얘기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제약·바이오 R&D 고급 인력들이 모여드는 곳 하면서 단연 '한미약품'이었습니다. 그런 한미에서 최근 3~4년간 R&D의 인력들이 퇴사하면서 업계는 들썩였다고 합니다.

석박사 인력정도가 아닙니다. 수십년의 업력에 이름값도 있는데다 해외 라이센스 인&아웃까지 가능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퇴사 소식이 들릴 때마다 "한미에서 또"라는 소식와 함께 업체들의 '러브콜'도 이어졌다고 하네요. 이직을 한 이들도 있지만, 컨설팅 업체를 차려서 제약·바이오 업체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한미 OB와 컨설팅을 가늠하고 있다는 한 업체의 관계자는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바이오 업계의 흐름을 잘 알고 있고, 인맥들도 워낙 넓어 사전 미팅만으로도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전할 정도입니다.

현재 일반인들에게 한미약품은 OCI와의 통합과 모녀-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미OB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 R&D의 산실이자 첨병 역할을 한 한미는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 중 HLB제약의 전신이었던 씨트리를 설립했고, 고(故) 임성기 회장과 한미약품의 초창기 성공을 이끌었던 김완주 박사의 한숨은 유독 컸습니다. 김 박사는 1942년생으로 팔순을 넘겼지만, 또렷한 기억과 생생한 목소리로 한미약품에 대한 최근 상황에 대한 마음을 털어놨습니다.

그는 "한미약품은 종근당, 동아제약, 대웅제약 등과 함께 대한민국 제약업계의 굵직한 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회사다. 그만큼 자체적인 쌓아올린 여러 개발 노하우와 한미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인재풀까지 자산이 풍부한 회사다. 그런 회사가 동종업계도 아니고, OCI와 이해할 수 없는 가치로 합쳐진다는 점에서 과거 한미를 다녔던 동료들이 안타까워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박사는 최근 퇴사한 후배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너무 아까운 인재들이 한미에서 나갔다. R&D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앞뒤 안가리고 무조건 돈만 퍼부으란 얘기가 아니다. 이미 신약개발은 세계 시장이 주무대가 됐다.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흐름에 맞게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박사는 성균관대 약학과(63학번)를 나와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유학한 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재직하고 있던 시절 임성기 회장을 만났습니다. 임 회장의 끈질긴 설득과 구애(?) 끝에 그는 국내 최초로 제3세대 세파계항생제를 개발해 한미약품에 기술을 이전했습니다. 면역억제제인 사이클로스포린 제조기술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1995~1998년에는 한미약품 부사장 겸 한미정밀화학 대표로 재직했습니다.

이어 "한미는 R&D가 바탕인 회사다. 임성기 회장은 이를 꾸준히 알고 실천해온 사람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기술력을 쌓아온 회사가 어디 있나. 제약회사의 경영은 그래서 남다르고, 한국은 더 그렇다. 아직 최종결정은 난게 아니라지만, 이런 점들이 고려됐는지 모르겠다"고 전했습니다.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도 R&D였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박사는 "임 회장이 방이동의 사옥을 짓고 자금적으로 너무 힘들어 했다. 때마침 외환위기까지 오고 있었으니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기적같이 노바티스와 계약이 성사되면서 계약금이 들어왔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미약품은 1997년 노바티스에 '마이크로에멀션'이라는 약물 전달 기술을 개발해 2000억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한미약품은 회사가 적자를 내더라도 매년 1000억원이 넘는 R&D비용을 투여했습니다.

지난달 한미그룹과 OCI그룹이 '이종(서로 다른) 산업 간 결합을 두고 세계적 트렌드(흐름)'라며 '바이엘'의 사례를 든 것과 관련해서도 선을 그었습니다. (전날 임주현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길리어드사이언스를 롤모델로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 박사는 "'한국판 바이엘'이라니 말이 안된다. 한국 제약업계는 태생부터 발전과정이 외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화학회사에서 시작한 해외 사례와 영업부터 시작해 바닥부터 커온 한국의 제약업계의 생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더군다나 OCI는 부광약품이라는 실패사례가 있는데, 이게 누구를 위한 통합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김 박사는 씨트리 창업당시 바이엘의 남양주 공장을 인수하는 등 바이엘과 인연이 있기도 했습니다. 독일에서 수학했고, 그만큼 바이엘과 한미약품의 다른 점을 알기에 갈길도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신약개발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한 김완주 박사는 "신약개발이든 바이오의약품 개발이든 항체와 백신 개발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개발이 지금은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한미가 선도적이기는커녕 거의 하고 있지 않다고 얘기를 들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할 때다"라고 밝혔습니다.

김 박사는 "임 회장이 살아 있었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꺼냈습니다. 실제 임 회장과 2살 차이밖에 나지 않으니 회사의 경영권 분쟁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겁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표 대결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창업자의 뜻을 잘 생각하면서 결정해줬으면 좋겠다"며 당부를 남겼습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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